ENGLISH

facebook youtube blog instargram

메뉴 리스트

ASEAN-COREA CENTERE

한-아세안센터 사업활동 AKC 소식 자료실

자료실

[아세안이슈 #18] 서평: The ASEAN Miracle: A Catalyst for Peace (아세안이 창조한 평화의 생태계)

서평: 「The ASEAN Miracle: A Catalyst for Peace」

 

<아세안이 창조한 평화의 생태계>

 

2020.07.17

 

 

1967년 8월 8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이데올로기로 세계가 양분된 냉전 시대에 유독 열전(hot war)이 휘몰아쳤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지역기구가 탄생했다. 역내 무력충돌이 빈번한 가운데 최초 5개국 간의 지역기구로 창설된 아세안은 회원국 간의 느슨하면서도 동시에 견고한 특유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지난 50여 년간 회원국을 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확대하는 등,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왔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적인 지역기구라는 호평을 받는 한편, 아세안은 약소국의 연합이라는 현실적인 한계와 지역기구로서의 집행력 부족이라는 제도적 약점으로 인해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가운데, 아세안 창설 50주년을 맞은 지난 2017년 출판된 「아세안의 기적(원서명: The ASEAN Miracle: A Catalyst for Peace)」은 그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타 비판에 가려진 아세안의 기적과도 같은 지난 50여 년간의 성과에 주목한다. 아세안 창설회원국 중 하나인 싱가포르 태생의 두 저자(Mahbubani, Sng)는, 각각 인도계와 중국계이면서도 학창시절 말레이 언어를 배우고,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생활하는 등 각자의 삶 전반에 있어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자연스레 접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동남아시아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세안이 이룩한 ‘평화의 생태계(Ecosystem of Peace)’의 가치를 전파한다.

 

책의 제1장 “The Four Waves”는 아세안이 가진 다문화의 공존성에 초점을 맞춰 동남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외부 문명의 물결을 소개한다. 이어 제2장은 아세안이라는 지역기구의 탄생과 이를 통해 구축한 ‘평화의 생태계’를 소개하며, 제3장에서는 이렇게 이루어 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외부 강대국과의 관계를 조명한다. 제4장과 제5장에서는 아세안 10개 개별국가의 특징과 지역기구로서의 아세안의 장단점을 SWOT(Strength; Weakness; Opportunities; Threats)분석을 통해 각각 살펴본다.

 

동남아시아 문화를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친 4가지 문명(인도, 중국, 이슬람, 서양)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대부터 주변 지역(인도, 중국, 중동)과의 무역을 통해 전파된 각 동양문화의 물결과, 이후 유럽의 대항해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식민지배로 확대된 서양 문물과 제도의 전래를 통해 동남아시아가 지금과도 같은 다양한 문화의 장(場)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계 최대의 도서국이자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아시아의 유일한 기독교 국가인 필리핀, 중국의 문화적 영향이 가장 생생한 베트남, 동남아시아 대륙부와 도서부를 아울러 지역 곳곳에서 발견되는 힌두 문화의 흔적, 식민지배를 통한 서양식 근대국가 제도의 존치 등, 동남아시아에는 세계 그 어떤 지역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역내 국가들이 해방을 맞아 독립국가로 재탄생함과 동시에 심화된 냉전의 위기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갈라놓았다. 특히, 인도차이나반도의 공산화와 역내 다수 국가에서 발생한 공산주의자 폭동은 여러 지도자를 우려시켰고, 이러한 위기감(fear)을 바탕으로 지역기구로서의 아세안이 탄생하게 된다.

 

저자는 아세안의 성공 배경으로 ▲아세안 창설 5개국을 결속시킨 공통의 위기감 ▲창설 초기 각 회원국을 이끌었던 유능한 지도자(leadership) ▲반공(反共)·친미(親美) 성격을 띠며 냉전의 승자 편에 서게 된 행운(luck) ▲시장주의 경제정책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고착시킨 아세안 기반 지역 네트워크(ASEAN-based regional network) 등의 5가지 요인을 꼽는다.

 

또한, 지난 50여 년간 아세안이 역내 평화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과정을 3가지 단계로 분석하고 있다. 1단계는 아세안이 창설된 1967년부터 냉전이 종식된 1990년으로, 인도차이나 지역이 공산권에 편입되며 동남아시아 전역에 위기감을 불러온 시기다. 하지만 이내 중소대립으로 인해 공산권이 분열되고, 아세안은 지역기구로서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역내 안정을 도모한다. 2단계는 아세안이 지금의 10개국 체제를 완성하며 지역기구로서의 확대를 추진한 1990년대다. 특히, 과거 역내 주요 분쟁의 원인이었던 베트남이 아세안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아세안은 본격적으로 역내 안정과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21세기 초부터 3단계에 들어선 아세안은 역내 및 대외 FTA 체결, 아세안 헌장 도입 등 제도적 기반을 발전시켜왔다.

 

“아세안과 세계열강(ASEAN and the Great Powers)”으로 명명된 제3장은 아세안과 미국, 중국, EU, 인도, 일본 등 주변 세력과의 관계를 아세안 내부자의 시각을 통해 살펴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두 저자는 제3장을 통해 아세안이 모든 국가와 유화적인 관계를 추구함을 암시한다. 약소국의 연합체인 아세안은 강대국 간의 충돌에 취약하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에게 아세안을 대중 견제 도구로 삼지 않도록 요구하는 한편, 중국에게 아세안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는 서방세계에 중국의 부상이 위협적이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설득한다. 또한, EU에게는 아세안이 군부 체제의 미얀마를 포용하여 평화적인 민주화를 이룬 사례를 통해, 당시 제제를 통한 압박을 강요했던 EU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상기시키며, 아세안을 하대하듯 했던 EU의 자세에 일침을 놓는다. 인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동남아시아가 인도의 문화를 쉽게 수용하는 바, 이러한 문화적 밀접함을 기반으로 양자관계를 보다 격상시킬 것을 요청한다.

 

일본과의 관계를 논한 부분은 한국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는 일본이 일찍이 후쿠다 독트린(Fukuda Doctrine)을 통해 아세안과의 관계 발전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는데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탈아입구(脱亜入欧)를 지향한 일본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는다. 과거사의 족쇄가 아직까지 대외관계의 걸림돌이 되는 동북아시아와는 달리 아세안은 태평양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희망함에도 불구, 일-아세안 관계가 경제협력 이상의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일본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다 노력해주기를 요구한다.

 

또한, 두 저자는 앞서 소개한 아세안의 기적적인 성과를 칭송하면서도 동시에 아세안의 발전을 위해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예산 부족과 집행력 제한으로 인한 아세안 사무국의 무기력함 ▲10개 회원국 내 주도적 역할을 맡을 국가의 부재 ▲시민사회의 아세안 공동체 의식 부재 등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목된다. 아세안의 취약점은 같은 지역기구인 EU와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EU와 아세안의 연간 예산은 약 8,000배가 차이나며, EU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등 지역기구 내 주도국이 있지만 아세안에는 아직 이와 같은 역할을 맡은 국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유럽 사람들이 스스로를 유럽인으로 인식하고, EU 공동체를 이해하듯이 아세안 지역의 사람들이 각각의 국적과 더불어 ‘아세안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인식을 제고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이러한 미완성적인 부분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지난 50여 년간 동남아시아의 평화를 조성하고, 지역 경제발전을 통해 역내 빈곤을 퇴치하는데 앞장섰으며, 주변 열강을 분쟁이 아닌 대화의 장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두 저자는 무수한 난관을 극복하고 역내 평화를 이룩한 아세안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피력한다. 지난 2012년, 지역공동체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EU의 전례를 상기시키며, 아세안 역시 또 하나의 성공적인 지역기구로서 EU와 동등한 명예를 거머쥐는 데 손색이 없음을 주장한다.

 

「아세안의 기적」은 지난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아세안 국가들의 평화를 향한 여정을 심도 있게 관찰한다. 그동안 아세안의 성과는, 어쩌면 아세안 스스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두 저자가 아쉬워하듯이 분쟁의 발발과 그 배경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일상의 평화는 그저 당연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아세안의 성과를 훌륭하게 조명한다.

 

다만, 이 책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과 주변국 관계에 대한 저자의 함의는 한-아세안 관계에 있어 분명 시사점을 지닌다. 특히, 저자의 일-아세안 관계에 대한 평가에서 엿보이는 아세안의 내심(內心)은 2017년부터 사람(People)’,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을 기반으로 한 신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과의 관계 발전을 꾀하는 한국이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1989년 대화관계를 수립한 이래 그간 한-아세안 관계는 2019년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베트남으로의 무역투자 쏠림현상과 양 지역 간의 무역불균형을 통해 드러나듯 아직까지 경제협력이 큰 폭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사람’중심의 한-아세안 관계를 설립하는 데 보다 노력을 기울여야 아세안에게 상인(商人)국가로 비춰지는 결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아세안이 진정한 이웃이자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보다 더 이해하고, 상생번영을 위한 포용적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신남방정책 2.0이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온 한국과 역내 평화의 생태계를 이룬 아세안의 기적을 바탕으로, 21세기에는 한국과 아세안이 함께 새로운 기적을 써내려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세안이슈 #17] 한국과 아세안, 관광재개를 위한 노력 [아세안이슈 #19] 아세안 유니콘의 부상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