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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Viet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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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원

  • 언어

    베트남어

  • 면적

    331,210km²

  • 인구

    9,646만2,106명(2019년 기준, 출처 The World Bank)

  • 수도

    하노이(Han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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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Viet Nam

베트남_

후에 왕궁(Hue Royal Palace)2020-04-03

후에(1) 후에 왕궁(Hue Royal Palace)

후에는 다낭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1802년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다. 수도를 후에로 정한 응우옌 왕조의 1대 황제, 지아롱(Gia Long, 阮福映) 은 중국 자금성을 모델로 호화스러운 왕궁을 짓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인부와 30년의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완공된 후에 왕궁은 오늘날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로 남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장엄한 왕궁의 게양대, 플래그 타워 (Flag Tower)



후에 왕궁 정문 앞에 있는 피라미드형 건축물. 3층 규모의 타워 꼭대기엔 높이 37m의 깃대와 8개의 대포가 배치되어 있다. 1807년, 왕궁 창건 시 방어 체계의 하나로 지어진 것으로 완공 당시엔 대포와 함께 병사들이 적병을 감시할 수 있도록 망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처음엔 나무로 만든 깃대를 사용했는데, 태풍에 의해 부러져 1904년에 무쇠로 만든 깃대를 새로 설치했고, 베트남 전쟁 중 또 한 번 부러져 콘크리트로 깃대를 설치한 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30년이 넘도록 응우옌 왕조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었으나 1945년에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후에를 점령한 후 현재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Red Flag with Yellow Star, 旗????黃)’로 교체했다.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지만 국기 게양식이나 국가 행사 때만 문을 열고 관광객의 출입은 통제하고 있다.


불타버린 왕궁의 유산을 되살리다, 근정전 (Hall of Diligent Governance)



왕궁을 찾은 외국 사절단과 국빈들이 황제를 알현하던 곳. 후에 왕궁에서 가장 큰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건물이었지만, 1947년, 응우옌 왕조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방화로 불타버려 현재 건물의 터만 남아있다. 베트남전쟁 후 태평루에 보관되어 있던 기록을 바탕으로 복구 작업을 진행했으나 근정전 양 옆에 있던 별관의 회랑만 겨우 복원되었고, 건물터는 무성한 잔디로 덮여버렸다. 후에 왕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일본 와세다 대학과 공동으로 복구 작업을 재시작했다.


중국 사절단을 위한 별관, 중국관(Palaces of Ta Vu and Huu Vu)



태화전 좌우에 자리한 별관. 중국 사절단이 황제를 알현하기 전 예의를 갖출 수 있도록 마련한 건물이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9세기 말, 민망 황제 때 완공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공연이나 무술 시범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사용됐다. 베트남전쟁 때 두 건물 모두 파손됐지만, 좌측 건물은 1977년, 우측 건물은 1986년에 각각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현재 우측 건물엔 갤러리가, 좌측 건물엔 공연장과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공연장에는 관광객들이 왕실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폐허만 남은 유럽풍 거처, 건중루 (Kien Trung Palace)



근정전을 지나 왕궁 북쪽 가장자리로 향하면 또 하나의 터가 보인다. 유럽 문화를 동경했던 카이딘 황제가 즉위 후 기존에 있던 건물을 철거하고 창건한 네오고딕 양식의 저택 ‘건중루’가 있던 자리. 1945년 응우옌 왕조가 몰락하기 전까지 황제의 거처로 사용됐고, 이후에 베트남 민주공화국 간부가 사용했다. 왕궁 건물 중 가장 최근에 지어진 만큼 시설이 매우 훌륭한데, 베트남전쟁 당시엔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나 건중루 앞에 있던 유럽식 정원까지 예전 그대로 복구되어 있다.


후에 왕궁의 입구, 응오몬 (Meridan Gate)



후에 왕궁 남쪽에 자리한 성문. 왕궁의 정문이었고 황제가 왕궁에서 거행되는 행사와 병사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누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풍수지리에 맞게 지어졌다. 방문객들은 왕궁 동서남북에 자리한 4개 문 중 응오몬을 통해서만 후에 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응오몬에 있는 3개의 대문 중 중앙문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이유에선지 지금도 중앙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좌측 문과 우측 문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다. 응우옌 왕조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는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에 주권을 넘겨준 뒤 응오몬의 누각에서 왕조의 마지막을 지켜봤다고 한다.


태평하게 쉬었다 가는 곳, 태평루 (Royal Reading Pavilion)



1847년 띠에우찌 황제가 왕궁을 거니는 중 쉬어가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든 휴식처. 뚜득 황제 때부터는 도서관으로 개수해 왕궁의 중요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왕조의 몰락과 베트남전쟁 중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아 문서들이 예전 그대로 하노이 국립 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 중으로 공사를 마치면 왕궁 전경을 볼 수 있는 2층 망루가 개방될 예정이다. 태평루 옆에 자리한 인공 연못에는 바위로 만든 정원이 있는데, 중국식 정원을 본떠 띠에우찌 황제가 직접 조성했다.


찬란했던 역사의 증거, 유물 전시관 (Exhibition of Royal Antiquities)



태화전 동쪽에 자리한 전시관. 전쟁 후 폐허로 변하기 전의 찬란했던 왕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물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무렵 폐허로 변하기 전 왕궁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왕궁에서 사용했던 식기나 의복 등의 유물로 구성되어 있고, 전시 테마를 수시로 바꿔 과거 왕궁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후에 왕정 미술박물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전시관으로 알차고 다양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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